고고학칼럼

아픔의 기록에서 세계의 유산으로 : 고고미술사학도의 시선으로 본 피란수도 부산

큐레이터 로크윙 2026. 7. 16. 23:52

안녕하세요! 며칠 뒤면 부산에서 정말 뜻깊은 국제 행사가 열립니다. 바로 2026년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입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이 거대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 바로 부산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세계가 주목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부산이 품고 있는 굴곡진 근현대사를 먼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이자 초량왜관을 통한 유일한 교역의 창구였던 부산은, 1876년 강화도조약(개항) 이후 일제 침략의 뼈아픈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일본인 전관조계가 설정되고 바다를 메워 도심이 확장되는 등 식민지 근대 도시로 강제 재편되는 아픔을 겪었죠.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든 수십만 피란민들의 마지막 보루, '피란수도'가 되었습니다. 쫓겨난 피란민들은 살기 위해 산기슭으로 올라가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판잣집을 짓고 치열하게 삶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그 모진 역사와 차별 속에서도 부산진의 청년들은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처럼 뜨거운 항일 저항 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개항장 시절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오늘은 이처럼 굴곡지고 아픈 역사들이 어떻게 ‘세계의 유산’이라는 가치로 승화될 수 있었는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역사의 지층인 부산의 진짜 매력을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1. 문헌과 땅속에 새겨진 변방에서 관문으로의 기록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을 조심스레 발굴해 내듯, 옛 문헌과 지도를 살펴보면 지금의 화려한 메가시티 부산 이면에 숨겨진 소박한 첫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래현 고지도. 산과 강, 바다가 어우러진 지형과 한자로 표기된 옛 지명들이 먹선으로 그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래현 산천조. 가마 모양의 산(釜山) 아래 자리 잡았던 작은 포구의 옛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고지도 속 변방의 작은 포구였던 ‘부산포’는 초량왜관이 설치되면서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유일한 교역의 창구로 변모했습니다. 단순히 물건만 오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히고 때로는 갈등을 빚어내며 독특한 경계의 문화를 만들어냈죠.

 

잔디밭 위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 석비인 약조제찰비.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표면이 마모되어 있으나 둥근 머리 형태와 비석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1683년 동래부사와 쓰시마 도주가 세운 약조제찰비. 국경 무역의 엄격한 규칙과 통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금석문 사료입니다. (현재 부산박물관 야외 전시)

 

비석에 깊게 파인 글귀들은 당시 밀무역과 불법 교류를 막고자 했던 조선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금석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비석은 그 시대의 법과 사회상을 활자보다 더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2.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 상흔을 딛고 세운 삶의 터전

 

부산의 지층을 조금 더 위로 걷어내면, 가장 시리고 아픈 시대의 흔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철저히 소외되었던 조선인들의 삶,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후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처절한 생존기입니다.

이 시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아미동 비석마을입니다. 피란민들은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판잣집을 지어야만 했습니다.

아미동 비석마을 골목길의 돌담 한 부분. 일반적인 건축용 돌이 아닌, 한자가 희미하게 새겨진 직사각형 모양의 오래된 일본인 묘비석이 건물의 기단부로 사용되어 박혀있는 모습.
아미동 비석마을의 축대와 계단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인 묘비석의 흔적. 죽음의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개척해야 했던 피란민들의 처절한 생명력을 증명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돌덩어리지만, 한자가 새겨진 묘비석이 건물의 주춧돌과 계단으로 쓰인 모습은 시각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 고고학에서 유구의 파괴나 재활용 흔적을 통해 시대의 격변을 읽어내듯, 아미동의 이 기형적인 건축 구조는 전쟁이라는 참화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해 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건축적 증거'입니다.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아픈 역사, 즉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이지만 부산은 이를 지우기보다 기억하고 보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투명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유네스코가 주목하는 위대한 '피란수도'의 유산들

 

필자가 큐레이터 프로그램 참여하면서 직접 찍은 동아대학교 석당 박물관
1925년에 건립된 옛 경상남도 도청 건물로, 피란 시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수도의 정부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1950년대 한반도의 임시수도였던 부산에는 국가의 기능이 마비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시스템을 유지해 내고, 수백만 피란민들을 품어냈던 1,023일간의 숭고한 기록이 도심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유네스코는 화려한 왕궁이나 거대한 성벽을 넘어, 극한의 전쟁 속에서도 인류가 연대하고 생명력을 이어간 이 '무형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피란수도 유산들을 소개합니다.

  •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현 임시수도기념관) 원래 1920년대에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붉은 벽돌의 2층 목조 건물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겸 거처로 사용되며, 전시 국방과 외교의 핵심 정책이 결정되던 정치적 심장부였습니다. 서양식과 일본식 건축 양식이 혼합된 근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 임시수도 정부청사 (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1925년에 건립된 옛 경상남도 도청 건물로, 피란 시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수도의 정부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붉은 벽돌과 장중한 서양식 르네상스 양식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현재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내 석당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역사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는 학도들에게는 매일같이 등교하며 한국 근현대사의 숨결을 들이마실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 부산근현대역사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192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점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되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반환 운동 끝에 현재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알리는 역사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식민 지배의 뼈아픈 상징에서 주체적인 역사 교육의 장으로 변모한 건축물의 궤적이 인상적입니다.
  • 부산항 제1부두 일제가 대륙 침략과 물자 수탈을 위해 1912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항만 시설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는 수많은 피란민이 이 부두를 통해 부산으로 들어왔고, 유엔군과 구호물자가 도착하는 한반도의 유일한 생명줄 역할을 해냈습니다. 수탈의 공간이 생존의 관문으로 뒤바뀐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습니다.
  • 우암동 소막마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소를 반출하기 위해 만든 소 검역소와 우사(소막)가 있던 곳입니다. 전쟁통에 부산으로 밀려든 피란민들은 거처를 구하지 못해 짐승이 살던 소막에 칸막이를 치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아미동 비석마을과 함께, 생존을 위해 어떤 극한의 환경도 이겨내야 했던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대표적인 주거 유산입니다.
  • 재한유엔기념공원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22개국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와 국제적 연대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세계 평화의 가치와 가장 맞닿아 있는 숭고한 장소입니다.

 

 

글을 마치며 : 세계가 주목하는 부산으로의 초대

1876년 개항부터 1950년 한국전쟁까지, 부산은 한반도의 가장 시린 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던 관문이었습니다. 초량왜관의 닫힌 문틈으로 들어온 근대화의 물결은 수탈의 통로가 되기도 했고,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는 피란민들의 처절한 삶의 터전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부산진 청년들의 뜨거운 피가 증명하듯, 부산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 끈질기게 희망을 직조해 낸 도시입니다.

이번 7월 19일 개막하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단순한 국제 회의가 아닙니다. 죽음과 피란의 공간에서 세계가 함께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인류의 보편적 유산'으로 도약하는 위대한 증명의 자리입니다.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부산에 모여 유산의 가치를 논의하는 지금, 여러분도 주말을 이용해 임시수도기념관이나 아미동 비석마을, 부산근현대역사관을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책 속의 역사가 아닌, 땅 위에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역사의 지층을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